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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진실을 가르쳐야만 한ㆍ중 평화를 시킬 수 있습니다.

           

           

           

          1. 고조선,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현재까지의 한국사 교육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왜곡된 역사교육은 수ㆍ당나라가 71년 동안 대를 물려가며 고구려를 침공하고 멸망시켰듯이 중국의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유권 주장, 한반도 북부에 대한 침략전쟁을 불러 올수 있다.

           

          수나라 1세황제 문제 양견

           

          2. 중국은 서기 184년에 일어난 홍건적의 난으로부터 약 400년 동안, 군웅할거의 혼란기였다. 여러 나라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며 이합집산하고 죽고 죽이는 대 혼란기이었던 것이다. 전답은 황폐해 졌고, 백성들은 굶주리고, 피는 흘러 내가 되었다.

           

          3. 이러한 전쟁과 살육과 약탈의 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수나라 문제(文帝) 양견이었다. 양견의 자긍심은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가장 위대한 군주를 자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신하들도 문제를 진시황과 비교하거나 진시황보다 더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하였다.

           

          4. 그러한 양견의 자존심을 짓밟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양견에게 “폐하께서 중국을 완전하게 통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수복해야할 중국의 고토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는 땅입니다.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옛날 은나라에서 봉한 고죽국 땅이었으며, 주나라에서 기자에게 봉해준 땅이었고, 한나라가 낙랑군, 현도군 등을 설치하여 지배하던 땅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충동질하였다.

           

          5. 약 400년 간의 분열과 혼란에 빠져있던 중국을 통일한 황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라는 자긍심을 가진 양견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통일하는데 국력을 모두 쏟아 부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침공할 국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6. 때문에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고 작위를 주는 등 화친 정책을 취한다. 고구려 또한 중국을 통일한 초강대국 수나라와의 화친을 위하여 1년에 수차례씩 사신을 파견한다. 이렇게 서기 581부터 598년까지 17년간의 위장된 평화가 지속되었다.

           

          7. 양견은 서기 589년 진나라를 멸한 후, 10년 동안 국력을 비축한다. 침략의 발톱을 숨기고 위장된 평화공세로 고구려를 안심시키면서 전쟁준비에 몰두한다. 전잰준비를 낸 문제 양견은 고토수복전쟁을 시작한다. 자신의 아들인 한왕 양량을 행군원수로 삼아 300,000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기습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양량이 거느린 30만 대군은 고구려군에게 전멸당하고, 겨우 4만 여명만 살아서 돌아갔다.

           

          8. 전쟁에서 승리한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수나라 또한 고구려를 다시 침략할 힘이 없었다. 때문에 양국 간에 사신을 주고받고, 문물을 교류하는 평화시대가 다시 열렸다. 그러나 그것은 수나라에서 위장한 평화였다.

           

          9. 서기 604년, 문제 양견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양제(煬帝) 양광 또한 중국 고토수복 전쟁, 중국의 완전한 통일 명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버지 양견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양광의 자긍심 또한 대단했다. 통일된 중국의 황제로서 중국이 아직도 수복하지 못한 땅이 있다는 말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양견은 10년 동안 고구려를 침략할 준비에 광분한다. 물론 고구려와 사신을 주고받는 위장된 화친정책을 취하면서…

           

          10. 서기 613년, 전쟁준비를 끝낸 수나라는 1,133,800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식량, 마초(馬草), 각종 장비 등의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자의 숫자만도 전투병의 두 배가 되었다. 고구려 침략전쟁에 3,000,000명 이상이 동원된 것이다.

           

          수나라 2세황제 양제 양광

           

          11. 수천년의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공격하던 305,000명의 수나라 대군 중에 302,300명이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하는 고구려 군에게 죽고, 2,700명만 목숨을 구해 달아나는 참패를 당하고 패퇴하였다. 이후에도 양광은 2 차례나 더 고구려 침략 전쟁에 나섰으나 모두 실패하였고, 결국 나라까지 망하였다.

           

          12. 수나라가 고구려 침략전쟁에서 연이어 참패하자, 중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군웅할거 시대가 되었다. 이때, 이세민이 그의 아버지를 앞세우고 모든 군웅들을 멸하고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다.

           

          13. 당(唐:618~626)나라 또한 중국에서 동쪽으로 옮겨간 기자조선ㆍ위만조선과 위만조선을 멸하고 한나라가 세운 낙랑군, 현도군 등 한사군(한삼군) 영역 위에 세워진 국가가 고구려라는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당나라 군주의 권위를 지키기 위하여 고구려 영토를 빼앗아 중국을 통일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4. 그러나 당나라 초대 군주인 고조 이연은 영토수복을 명분으로 한 고구려 침략전쟁에 국운을 걸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고구려를 복속시켜야 할 대상이 아닌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한다는 외교문서를 가진 사자를 고구려로 파견하려 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중국이 다시 되찾아야 하는 중국 땅이기 때문에 국가대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배구, 온언박 등이 강력히 반대하였다. 때문에 고구려를 국가대 국가로 인정한다는 결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 1세황제 고조 이연

           

          15. 수나라 멸망 과정에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여러 나라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중국 통일을 이룩한 당나라 태종(627~649) 이세민의 자긍심은 수나라 문제, 양제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16. 약 400년 이상 분열과 혼란에 빠져있던 중국을 통일한 실질적인 황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라는 자긍심을 가진 이세민으로서는, 중국이 아직도 수복하지 못한 땅이 있다는 말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를 공격할 힘이 부족하였다. 때문에 고구려와 화친을 위장하면서 정치를 안정시키고 군비를 강화하면서 고구려 침략 기회를 엿보았다.

           

          당나라 2세황제 태종 이세민

           

          17.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 중국의 고토이므로 되찾아 와야 한다는 명분을 언제까지 버려둘 수는 없었다. 때문에 당나라가 건국 된지 36년이 지난 서기 644년이 되어서야 고구려 침략전쟁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세민의 침략전쟁도 안시성의 참패로 실패하고 만다. 그 후로도 고구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다가 죽고 말았다.

           

          18. 이세민의 뒤를 이은 고종 이치 또한 고토수복의 명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강력한 고구려군을 이길 수 없었다. 때문에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하여 신라와 합세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리고는 연남생과 남건, 남산 간의 내분과 연남생의 반역으로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598년, 수나라 문제의 침략으로부터 668년 당나라 고종의 침략에 이르기까지 71년간의 침략전쟁의 결과로 고구려는 멸망하였다.

           

          당나라 3세황제 고종 이치

           

           

          19. 당나라에 의한 71년간의 고구려 침략전쟁은 중국의 고토수복전쟁이고, 중국의 통일전쟁이었다. 당 태종 이세민의 일곱째 아들인 장왕(蔣王) 이운(李惲)의 지시로 두사선(杜嗣先)이 찬술한 토원책부, 과거시험에 출제될 예상문제와 모범답안을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된 문답에 고구려 침공에 관한 방책을 논한 정동이(征東夷)’라는 항목에 들어 있다. 그 답변 말미에 고구려 정복이 이뤄져야 천하 통일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은 고구려 영토를 중국이 꼭 되찾아 와야할 옛 영토로 보았다.

           

          20. 그러나 고구려의 멸망은 고구려 고씨왕조의 멸망이었을 뿐, 고구려 전 영토가 당나라에 점령당한 것도 아니고, 고구려인들이 당나라의 지배하에 들어 간 것도 아니다. 고구려가 멸망할 때 가구 수가 697,000호이었으므로 그 인구는 약 300만명 내외이었다. 고구려인들 중에 남자는 다 무예를 익힌 전사이었다. 때문에 1 가구에 1명의 장정이 있다고 할 때, 697,000명 전후의 전사가 있었을 것이다. 각 부족, 각 지역마다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의 전사들이 있으니 그들을 다 제압할 수도, 직접 지배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고구려 각 부족장들에게 도독, 자사, 현장의 벼슬을 주고, 그들이 그대로 자기지역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당나라 편에 서지 않고 발해를 세웠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불구가 되고, 수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수많은 재산을 낭비했지만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1. 만약 김종서 박사의 연구로 밝혀낸, 기자조선은 실재한 국가가 아니라 상상속의 국가이고, 위만조선과 낙랑군현도군임둔군진번군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하 서쪽의 요녕성 서부지역, 하북성 동부지역에 있던 고구려 변경지역이고, 그것도 본래는 한국의 고토였다는 역사의 진실을 알았더라면, 그래서 고구려에서 수당나라로 간 사자가 수당나라의 군주와 관리들을 설득시켰다면 수당나라가 국운을 건 71년간의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고, 고구려도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22. 중국 은나라 왕족인 기자가 서기전 1117년경 한반도로 와서 야만족인 조선인들을 교화시켰고, 기자와 기자의 후손들의 기자조선이 약 920여년 동안 한반도 북부를 지배하였고, 서기전 194년 기자조선을 멸망시킨 위만과 그 후손들의 위만조선이 서기전 107년까지 한반도 북부를 지배하였으며,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중국 통일왕조인 한(漢)나라가 낙랑군, 현도군, 임둔군, 진번군 등의 한사군을 설치하여 한반도 북부를 지배하였으며, 중국인 낙랑군 대방군 등의 중국 군현을 두어 서기 314년경까지 한반도 북부를 지배한 가운데 고구려가 압록강 유역에 건국하여 소국으로 있다가 낙랑군, 대방군, 요동군 등을 멸하고 중국 군현들을 주 영역으로 한 나라가 되었으며, 고구려를 이어서 발해가 그 영역을 차지했다고 왜곡한 한국사가 일제식민지 교육이고, 그러한 일제식민지교육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한국 초, 중, 고등, 대학교의 한국사교육이다.

           

          23. 이러한 왜곡된 한국사 교육을 근거로 중국이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지방사라고 주장하는 역사왜곡(동북공정)을 자행하고 있다. 약 1400년 동안 계속되는 기자조선 → 위만조선 → 한사군이 약 1400년간 한반도 북부를 지배하였고, 그 한사군 지역에서 고구려가 나와 한사군과 요동군을 주 영역으로 했으니 고구려 역사가 곧 중국사이고,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으니 발해의 역사가 곧 중국사라는 것이다.

           

          24. 거기에 여진족의 금, 몽골족의 원(몽골제국)도 한반도 북부를 영토로 했었고, 만주족의 청나라는 약 260년 동안 조선을 복속시켰었다. 그러므로 한반도 북부는 약 2500년 동안 중국의 영토였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중국의 자존심과 애국심에 호소하여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중국의 강경파 지도자가 나타나서, 약 2500년 동안 중국의 고토였던 한반도 북부를 찾아와야 한다는 여론을 이끈 다면 중국에 의한 영유권 분쟁과 영토수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25. 이러한 중국의 역사침탈과 영유권 분쟁을 막으려면, 기자조선은 실재한 국가가 아니라 상상속의 국가였고, 위만조선한사군 영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요하 서쪽의 요녕성 서부 및 하북성 동부지역이었으며, 거란족의 요여진족의 금몽골족의 원(몽골제국)만주족의 청나라 역사는 중국이 주인이 된 역사가 아니라 중국이 거란족여진족몽골족만주족의 식민지배를 받은 역사라는 것, 말갈족여진족만주족은 한국과 같은 혈통을 가진 종족으로 여진족의 금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역사는 한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등의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 김종서 박사의 연구 내용을 널리 알려 한국과 중국, 세계의 역사교과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26. 그러나 한국의 초, , 고등, 대학교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전혀 가르치지 않고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인에게 자랑스러울 만한 역사문화를 모조리 말살왜곡한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추종하는 이들이 한국 고대사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7.일본의 한국 침략을 불러올 독도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본의 양식있는 지식인들은 그러한 역사의 진실을 다 알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국 영토와 주권을 강제 침탈하는 과정에서 일본 시마네현(일본어:島根県)의 부속도서로 강제 편입시킨 불법적인 행태를 근거로 한 억지 주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을 말할 수 없다. 한국이나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 있어서나 영토 문제는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 상대국의 입장에 서서 말하면 매국노, 반역자로 매도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할 때마다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폭발하여 발생하는 일본의 경제적 손실이 독도를 빼앗아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비교 할 수 없도록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이유에는 엄청난 음모가 숨어있다.

          일본은 한국이 독도를 절대로 일본에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가끔씩 한국이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강제 점령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여 이슈화시킴으로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한반도 남부가 일본의 영토였다는 왜곡된 임나일본부를 근거로 한반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한반도를 침략했던 것처럼,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반도를 침략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게 되면, 한반도를 침략할 것이다. 그때, “한국이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강제점령하고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동안 독도의 반환을 한국에 요구 했지만 한국이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돌려주지 않고, 돌려받을 가망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력으로 일본의 영토를 수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한반도 침공은 영토수복을 위한 정당한 전쟁이다.”라는 명분을 일본 국내와 세계에 표명할 것이다.

           

          28. 왜곡된 역사교육으로 인한 중국과 한국, 일본과 한국의 전쟁을 예방하여 한국과 중국의 평화, 한국과 일본의 평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고, 세계평화를 지키려면 우리 역사모의 역사교육 바로잡기 운동이 한국과 세계 모든 나라에서 성공하여야 한다.

           

          위 내용은 김종서 박사의 연구서인 신시단군조선사 연구』『기자 위만조선 연구』『부여 고구려 백제사 연구』『한사군의 실제 위치 연구』『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비정 연구』『고조선과 한사군의 실제 위치를 찾아서1~8, 한국사 교과서 바로잡기 1000장면1~3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역사모(www.yeoksamo.com) 홈페이지나 가까운 곳의 도서관 혹은 서점을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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